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왕의 난 (문단 편집) === 등장인물 === [[파일:attachment/8KingBattle.jpg]] 8왕의 봉토. 하지만 성도왕 사마영이나 하간왕 사마옹처럼 분봉지와 실제 병력을 가지고 지배한 거점이 다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큰 의미는 없다. 책봉된다고 반드시 부임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팔왕의 병력은 작위가 아니라 무관직에서 비롯하였기 때문이다. 하간국의 왕이지만 진서장군으로 관중의 병력을 가진 하간왕 사마옹이 그런 예이다. 일련의 사건을 주도한 종실 왕과 그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보통 [[진서]] 제 59권 '여남왕량등전'에 열전이 있는 8명을 주요 팔왕으로 지목한다. 해당 열전에서 다루는 이들은 볼드체 표시. * '''여남문성왕(汝南文成王) [[사마량]](司馬亮)''' * 선제 사마의의 3남, 무제 사마염의 숙부. 혜제 사마충을 기준으로는 작은 할아버지. * 황실의 가장 큰 어른으로 외척 [[양준(서진)|양준]]이 죽은 뒤 자동으로 정권을 인수받았다가 초왕 사마위에게 살해되었다. 사실 이 사람은 난을 일으킨 게 아니라 모살당한 것이므로 팔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찌보면 팔왕의 난 중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 [[독발수기능]]의 난 때 고전하는 아군을 구원하지 않아 참패를 면치 못하게 만든 부하 유기를 살리려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할 만큼 착한 사람이긴 한데 양준이 자신을 축출하고 권력을 독점하려 할 때 맞서 싸우지 않고 지방으로 도주하고, 양준이 몰락한 뒤에는 권력을 잡은 뒤 공이 없는 사람들까지 벼슬을 다 나눠주면서도[* 이런 일 때문에 기강이 안 선다며 [[부함]]이 여러가지로 간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사마위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려 하다가 빡친 사마위에게 공격당할 땐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살해당한 인물이었다. 하내 사마씨 황실의 나이 많은 웃어른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었는데 가남풍의 계략에 말려 가장 처음 목숨을 잃는다. * '''초은왕(楚隱王) [[사마위]](司馬瑋)''' * 무제 사마염의 5남. 혜제 사마충의 이복동생, 장사왕 사마예의 동복형이다. * 여남왕 사마량을 주살했지만 그 자신도 가남풍에게 주살당했다. 가남풍의 계략에 이용당한 사냥개. 다른 사마씨들과는 달리 가장 행동력이 있던 인물이었는지 모든 일이든 화끈하게 결정하고 처리했다. 양준 일당이 척살당한 뒤 자신을 몰아내려는 사마량에게 반감을 품고 가남풍과 힘을 합쳐 사마량과 위관을 척살한 뒤 자신의 공로를 자화자찬하다가 가남풍에게 토사구팽당했다. 죽기 전에 가남풍이 사마량, [[위관]]을 척살하라고 지시한 교지를 사형수에게 보이며 내가 왜 죽어야 하냐며 징징거렸다고 하는 굴욕적인 최후를 맞았다. 사실상 팔왕의 난의 원흉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 선제 사마의의 9남, 무제 사마염의 숙부. 혜제 사마충의 작은 할아버지. * 가남풍을 주살했지만 결국 야심을 드러내 제위에 올랐다가 제왕 사마경 등에게 주살당했다. 사마륜은 혼자서 결단내리는 건 별로 없고 참모 [[손수]]에게 질질 끌려가기만 했으며 가남풍을 척살한 뒤에는 혜제 사마충을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사마충의 손자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다가 다른 왕들에게 공격당해 3개월 만에 손수와 함께 주살되었다.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고 세력도 압도적이지 않은 주제에 찬탈하다가 망했으니 좋은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 회남군왕(淮南郡王) [[사마윤]](司馬允) * 무제 사마염의 9남. * 거점은 회남. 집권하고 전횡을 부린 조왕 사마륜에게 항거했다가 패사하였다. 사마윤은 소위 팔왕에는 들질 않는다. * '''제무민왕(齊武閔王) [[사마경]](司馬冏)''' * 제헌왕 [[사마유]]의 아들, 무제 사마염의 조카. 혜제 사마충의 사촌형제. * 거점은 허창(許昌)으로 조왕 사마륜을 주살했다. 사마경은 본래 지혜롭고 남들에게 인자한 성품이었다는데 처음에는 사마륜과 함께 했다가, 사마륜이 황제가 되어버리자 다른 왕들과 힘을 합쳐서 사마륜을 잡아죽였다. 그리고 나서 권력을 독차지하고 요직에 측근들을 앉힌 뒤 사촌인 혜제를 핍박하며 지나친 향락과 사치를 일삼다가 결국 다른 사마씨들에게 통수맞고 죽었다. * '''장사려왕(長沙厲王) [[사마예]](司馬乂)''' * 무제 사마염의 16남. 혜제 사마충의 이복동생. 초은왕 사마위의 동복동생이다. * 거점은 낙양(洛陽)으로 조왕 사마륜과 제왕 사마경을 주살했다. 그나마 팔왕의 난 중에서 정상인에 가까운 사람인데 제위를 찬탈한 사마륜을 패고, 이어서 향락에 흠뻑빠지며 국정을 농단하는 사마경을 몰아내며 혜제를 구출하기 위해 100명의 선봉대를 친히 이끌고 낙양에 진군해 황제를 구하고 사마경을 척살했다. 이후 자신의 형인 혜제를 충실히 보필하고 다른 왕들과 협치를 하여 엉망이 된 제국의 체제를 재정비하고 지방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하간왕 사마옹의 꾀임에 넘어간 성도왕 사마영이 배신을 때리는 바람에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절대 열세인 상황에서 분전해 사마영을 고전케 했지만 동해왕 사마월이 느닷없이 역습을 가하는 바람에 끝내 자식들과 함께 사로잡혔다. 그 후 사마옹의 부하 [[장방(서진)|장방]]에 의해 산채로 화형당했다. 팔왕 중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으로, 장방의 부하들조차 너무 잔인한 최후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 무제 사마염의 6남. 혜제 사마충, 장사왕 사마예, 초왕 사마위의 이복동생. * 거점은 업(鄴). 조왕 사마륜,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를 순서대로 주살했다. 사마영은 본래 똑똑하고 백성들에게 인자한 사람으로 인망이 두터웠다고 하는데 처음 행보는 의기로왔으나 곧 하간왕 사마옹에 의해 흑화해버렸다. 장사왕 사마예와 힘을 합쳐 조왕 사마륜을 축출하고 권력을 얻었다. 하지만 조왕 사마륜, 제왕 사마경을 잇달아 몰아낸 뒤에는 황태제가 되려는 야욕에 빠져 하간왕 사마옹의 꾀임에 넘어가 장사왕 사마예를 통수쳐서 죽여버렸는데, 왕들 사이에서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마예의 죽음으로 사실상 서진의 마지막 희망이 끊어졌다. 그 후 동해왕 사마월의 연합군이 자신을 몰아내려 하자 흉노족의 유연과 손을 잡고 맞섰으나 결국 패배했고, 훗날 유곤의 형인 유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 사마방의 3남 안평헌왕 [[사마부]]의 손자, 태원열왕 [[사마괴]]의 장남, 무제 사마염의 6촌. 혜제 사마충의 재당숙(7촌 삼촌뻘) * 거점은 장안(長安). 역시 조왕 사마륜,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를 순서대로 주살했다. 성도왕 사마영 흑화의 1등 공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로 조왕 사마륜이 득세할 땐 그와 손을 잡았다가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이 사마륜을 공격하자 세 왕 편에 들었다. 그 후 제왕 사마경이 타락하자 성도왕 사마영, 장사왕 사마예와 힘을 합쳤고, 황태제가 되려는 야욕에 사로잡힌 사마영을 부추겨 사마예를 치게 해 그를 잡은 뒤엔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이후 오랜 싸움으로 힘을 잃어버린 사마옹은 사마영과 흉노까지 끌어들여 힘을 합쳐 동해왕 사마월+예장왕 사마치와 맞서 싸웠으나 형세가 불리하자 성도왕 사마영을 잡아 죽게 한 뒤 사마월에게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본인도 사마월에게 살해당했다. * '''동해효헌왕(東海孝獻王) [[사마월]](司馬越)''' * 사마방의 4남 사마욱의 손자, 고밀문헌왕 [[사마태]]의 차남, 무제 사마염의 6촌. 혜제 사마충의 재당숙. * 성도왕 사마영과 하간왕 사마옹을 주살했다. 다른 사마씨들이 난리칠 때 혼자 숨죽이고 지켜보다가 대충 정리가 되었다 싶으니까 튀어나온 기회주의자. 물론 그 명분은 어지러워진 천하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지만, 당연히 말이 안되는 소리다. 처음에는 기세좋게 밀고 나가다가 흉노까지 합세한 성도왕 사마영+하간왕 사마옹의 세력에 밀렸는데 이에 질세라 선비족을 끌고와서 맞불을 놔버렸다.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돼서 사마옹까지 잡아죽였지만 이 개판으로 인해 서진의 영역안에 흉노와 선비라는 큰 위험이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다. 혜제에게 독이 든 떡을 먹여 죽였다는 음모론도 있다. 예장왕 사마치를 황제에 올렸는데 그후 영가의 난이 발발해 사방에서 이민족들이 들어오고 [[유연(전조)|유연]]의 흉노족과 [[석륵]]의 [[갈족]]이 낙양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막기 위해 지방에 파발을 띄워 당장 낙양으로 오라고 명령하는 등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정적이나 위험 인물들에게 잔인하기로 유명했고 그 와중에도 권력을 독점하고자 사마치의 측근들을 주살해 황제를 분노하게 했다. 결국 사마치는 사마월을 숙청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음모가 발각되어 사마치의 배신을 알게 된 그가 분사해 피를 토하고 죽은 후 서진 정권은 순식간에 와해되었고 이민족들이 서진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그 후 태위 [[왕연]]이 10만의 병사 및 백성들과 함께 그의 시신을 관에 싣고 동해로 도망가다가 석륵의 군대에 붙들려 몰살당하고 사마월의 시신은 불태워졌다. * 예장왕(豫章王) → 회계공(會稽公) → 회황제(懷皇帝) [[사마치]](司馬熾) * 무제 사마염의 17남. 혜제 사마충, 장사왕 사마예, 초왕 사마위, 성도왕 사마영의 이복동생. * 사마치는 사마월에 의해서 황제가 되었지만 영가의 난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흉노족이 세운 [[전조]]의 황제 [[유총]]에게 술을 따르며 말을 몰아주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에 신하들이 통곡하자 유총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사마치를 죽여버렸다. 사실 사마치는 명석한 사람이었고 국정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한 성품의 소유자였으나 사마월의 전횡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죽이려 했다가 일을 그르쳤고[* 그런데 마냥 그르쳤다고 볼 수 없는 게, 사마월을 놔 두는 게 사마치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었다.] 결국 패망했다. 아래는 팔왕의 난과 관련된 주요 인물의 '''간단한''' [[서진/계보|계보도]]. [include(틀:서진의 계보도)] * 팔왕의 난 당시 사망한 서진 종실 제왕: 여남왕 [[사마량]], 초왕 [[사마위]], 회남왕 [[사마윤]], 진왕 사마욱[* 회남왕 [[사마윤]]의 장남이자 진헌왕 [[사마간]]의 양자], 한왕 사마적[* 회남왕 [[사마윤]]의 차남이자 시평왕 [[사마유(동명이인)|사마유]]의 양자], 조왕 [[사마륜]], 조 태자 사마과, 여음왕 사마건, 고밀문헌왕 [[사마태]], 동안왕 [[사마요]], 의양왕 [[사마위#s-2|사마위]][* [[사마망]]의 손자이자 사마홍의 아들], 제왕 [[사마경]], 신야왕 [[사마흠]],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청하강왕 [[사마하]], 동래왕 [[사마유(동명이인)#s-3|사마유]]. * 이후 죽은 황족: 혜제 [[사마충]], 동해왕 [[사마월]], 회제 [[사마치]], 오왕 [[사마안]], 민제 [[사마업]], 신채왕 [[사마등]], 고밀왕 [[사마략]], 남양왕 [[사마모]], 남양왕 [[사마보]], 청하왕 사마담[* 청하강왕 사마하의 아들], 민제의 형제들 [[사마고]], [[사마연]], 안덕현공 사마영 등 수백 명. 그냥 쉽게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삼국지]] 등장인물들과 연계해서 요약하자면 [[사마염]] 아들 3명, [[사마의]] 아들 2명, [[사마유]] 아들 1명, [[사마의]] 조카손자 2명이다. 사마염을 중심으로 '''불과 7촌 이내 사람들끼리''',[*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 7촌은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친족관계가 밀접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불과 60년대만 해도 7촌은 가까운 관계였다. 애당초 부계혈족 8촌까지는 유복친이라 하여 상복을 입을 만큼 가까운 관계로 규정되었으니 고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바로 와닿게 설명하면, 당신의 손자와 당신 사촌의 자식이 정확히 7촌간이다.] 더 편하게 생각하면 사마의의 부친인 사마방의 손자~현손자끼리 '''서로 죽고 죽였으니''', 게다가 일반인들끼리도 아닌 국가 지배계층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다스리라는 나라는 안 다스리고]] 1~2년 동안도 아니고 '''장장 15년'''간이나 이런 난리를 계속 벌여댔으니 나라가 폭삭 망하는 건 당연지사.[* 이후 명나라 시대에도 [[정난의 변]]이라는 내전을 4년간 벌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사직도 온전히 보존했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라는 것을 엄청난 스케일로 정말 완벽히 실천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